예상했던 대로, 라고 해야 할까.
우산 안 가지고 갔다고 하더니, 지율을 아는 그 곳의 여러 존재들이 만장일치로 예상했던 대로 한없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하늘 한번 보고, 주위에 아는 사람 없을까 두리번거려보는 지율이 눈에 들어온다. 아, 오길 잘했네. 어차피 비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서윤은 즐겁게 걸었다.
[Rainy]
“건너와 있었구나...”
“네. 기드온 군이랑 사장님이, 우산 두고 갔다고 해서요.”
맑은 하늘빛 바탕의 한 귀퉁이에 하얀 깃털이 프린트 된, 제 세계에서 챙겨온 우산을 든 서윤이 생긋 웃었다. 여기까지 오게 만든, 그 이야기 뒤에 붙은 바보라거나 팔푼이라거나 하는 수식어는 빼도 괜찮겠지. 하긴, 이럴 때 마중 나올 만한 존재는 거기서 찾기가 난감하긴 하다. 총천연색 머리칼에 바깥을 모르는 용들과 머리에 고양이 귀를 단 사장님. 그나마 서윤은 작정하고 사고칠 작정으로 날개나 눈, 머리색을 드러내지 않으면 눈에 띄게 특별할 것 없는 대한민국 여고생이다. 덕분에 손님 격이지만 어쨌든 마중 당첨. 조금...멋대로 나오기는 했지만. 챙겨온 우산을 지율에게 건네던 서윤이 순간 뭘 본건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물었군...”
“잘못 골라왔네요......”
그것도 끄트머리 쪽이 아닌, 우산 꼭대기 쪽을 용케도 물어놔서 앙증맞은 이빨 자국이 묘한 장식처럼 나 있다. 이래서야 은근히 빗줄기가 센 지금 우산으로 쓰기는 난감하다. 할 수 없이 서윤이 들고 있던 자기 우산을 내밀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저는 텔레포트해서 갈게요.”
거리가 만만치 않긴 했지만 후유증이야 하루 이틀이던가.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감수할 수 있었다. 차마 같이 쓰자고 할 수 없었던 것은 나름대로 지율을 배려한 것이었지만.
“같이 쓰고 가면 되지 않아?”
......둔탱이. 바보. 팔푼이. 돌아가면 지율에게 줄줄이 붙곤 하는 수식어들을 서윤은 속으로 주워섬겼다.
눈에 들어오는 빗줄기는 잦아들기는커녕 굵어지고 있는데, 귀에 들어오는 빗소리는 어쩐지 멀어진 것 같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겠지. 온 신경은 우산을 받아들고 옆에서 걷는 지율에게 쏠려 있으니까. 그냥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소대로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건 아니었을 텐데...? 그 와중에도 꿋꿋이 태연한 얼굴을 자랑해주는 무딘 얼굴이 얼마나 고마운지.
“...어디 아파?”
“에?”
“아니...안색이 별로여서...”
...얄미워 죽겠다.
경축해다오, 친구들아. 너희가 날 보며 쉬던 한숨의 의미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아. 그래도 친구들의 ‘에라이 이 둔한 화상아!!!’를 재현할 수는 없으니.
“아픈 거 아니예요. 비, 좋아하거든요.”
환하게 생글 웃어 보이는 것으로 무마. 익숙치 않은, ‘특별한 상대’와의 빗길은 길고도 짧은 느낌이다. 오기를 잘한 걸까...?
...모르겠어.